가난한 남학생의 궁핍한 홍콩여행-18일차의 클럽

 요새는 웹툰 복학왕을 즐겨본다. 이미 한창 스토리 전개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보려니, 봐야할 것이 너무 많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다. 기안84는 그림은 참 못 그리는데, 스토리텔링을 잘 하는 것 같다. 경험이 그렇게 풍부한 건지, 주위에서 도움을 좀 받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고등학생 때 패션왕을 조금 보다가 우기명이 늑대인간으로 변할 때 즈음 그만뒀던 걸로 기억되는데 중간중간 그 때 보던 패션왕의 내용들도 섞여 있어서 더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복학왕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어제 클럽을 다녀온 후에 낮에 느지막히 깨어나서는 복학왕을 보고 있으려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다. 그래도 다녀온 것은 다녀온 것이니 기록을 해두고자 한다.

 지난 번에 만났던 인도인 친구와 함께 클럽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 H까지 총 세 명이서 간 것인데, H는 중국 본토에서 온 유학생으로 여자친구가 베이징에 있었다. 방학 때마다 만나는 셈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8년 째 만나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사귀었다는데, 아직까지도 깨가 쏟아진다. 내가 있는 Hung Hom 역에서 침사추이 까지 걸어가서는 빅토리아 하버에서 맥주를 조금 마시고 나서 지하철을 이용해 Lan Kwai Fong 이 있는 센트럴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는 경로였는데 빅토리아 하버까지 걸어가는 길 내내 통화를 하던 것 같다. 충격적인 것은 모든 사실을 여자친구와 공유하면서 클럽에 간다는 사실까지 공유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이성 친구같은 것인가?? 예전에 홍콩, 중국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중국 남자아이들은 물어보면 하나같이 여자친구가 있는데 다들 7~8년 씩 되었다고 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저 교수님이 도대체 어떤 애들을 만나고 온건지 궁금했는데 이런 애들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끼리 가는데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면서 면박을 주기도 했지만 정말 대단한 연애를 하고 있는 친구다. 응원해주고 싶었다.

 침사추이에서 지하철을 타서 센트럴로는 두 정거장이다. 한 정거장을 갔을 때 인도인 친구가 여기서 안내리는 사람들은 다 클럽을 가는 길이라고 해서 둘러보았는데 정말 복장이 모두 클럽을 가는 복장이었다. 아, 복장을 얘기하자면 또 할 얘기가 많다. 홍콩 클럽은 도대체 어떻게 입고 가야하나 걱정이 되어 가지고 있는 옷들을 전부 꺼내 보면서 고민을 했다. (그래봤다 5벌 남짓하다.) 인터넷에 hong kong club wear를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여자들밖에 나오지 않을 뿐이고 남자들의 모습은 일이 끝나고 가는 것인지 전부 셔츠 차림이다. 그래서 고심을 하다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긴 바지인 와인 색 와이드팬츠에 단정해 보이는 셔츠를 신고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클럽간다~ 멋 좀 내 봤다~'하는 한국인 촌뜨기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막상 학교 앞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는 등산복 바지 같은 것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어 신분증 역할을 할 여권을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지난 번에 산 나이키 그래픽 티셔츠로 갈아 입고 나갔다.

 센트럴 역에는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이곳에 클럽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웬 정부 건물들, 고층 건물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D번 출구로 나가보니 또 다른 세계였다. 어디서들 이렇게 밤거리를 찾아서 나오는 것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길거리 공연도 이뤄지기도 하고 차력쇼같은 걸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이상한 티켓같은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할인쿠폰 같은 것들인가 싶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나씩 받아가면서 그냥 지나쳐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하나를 받아가 도록 했다. 알고보니 클럽 무료 입장권 같은 것들이었다. 여행책자를 보면 입장권이 못해도 400달러는 한다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돈을 내고 들어가는 거지?? 여튼 홍콩 클럽은 공짜로 갈 수 있는 셈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심지어 한 곳의 쿠폰은 무료입장에 음료도 한 잔 공짜로 준다고 하니 여기는 뭘로 돈 벌어 먹고 사나 괜히 걱정해 보았다.

 사실 정말 궁금했던 점은 클럽, 그 이후였다. 클럽의 본질적인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성을 만나 순간의 외로움을 달래는 곳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클럽 그 이후의 장소가 필요할텐데 도무지 이곳의 임대료로는 주변에 모텔같은 것들이 있을리가 만무하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살짝 물어봤더니 살짝 웃으면서 'Toilet'이라는 말을 했다. 진짜??????? 도대체 여기는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동네인지 살아갈 수록 감이 오질 않는다. 정말 화장실에서???????

 우리가 쿠폰을 받아 들어간 곳은 levels라는 클럽이었다.(이제껏 레벨2로 알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줄이 정말 길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나 놀라고 있을 무렵에 인도인 친구가 다른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인사를 했다. "나 기억해?!"하면서.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떨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너 여기서 뭐하냐?!" "넌 여기서 뭐하냐?!" 하며 웃다가 어색해질 것만 같은데 인도인친구에게 물어보니 졸업 후 처음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얼굴을 알아볼수나 있었던게 신기하다.

 알고보니 길어보였던 줄은 신분증 검사 때문에 생긴 정체였고 입장은 그렇게 오래걸리지 않았다. 클럽을 지키는 문지기들은 도대체 무슨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덩치가 정말 컸다. 처음 만나보는 국적같았다. 영화에서 본 이슬람 갱들 혹은 마피아라면 이렇게 생겼을까. 사회에서 안 좋은 일로는 절대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손님들을 상대로 수금하듯이 행동하지 않고 정히 손님으로서 대해주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 홍콩의 클럽은 한국의 클럽과 똑같았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몇 개 있다가 중앙으로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이 빽빽하게 숨을 쉬고 있는 스테이지가 있었다. 이런 곳으로 음악만 듣고 춤만 추러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몸이 밀착될 수 밖에 없는 인구밀도 상, 간단하게 신체 변화가 일어나는 남자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은 새벽 2시 이전에 무료 입장과 무료 음료를 주는 티켓이 있는 클럽을 향해 떠났고 나는 조금 더 남아있게 되었다. 한 번 화장실을 가려고도 했다.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고 화장실 픽토그램을 따라 걸어갔지만, 그곳은 말로만 듣던 그런 화장실이 아니었다. 덩치가 큰, 마피아처럼 생긴 사람이 줄 관리를 하고 있어서 이런 인구밀도에도 이런 청결함이 가능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곳이었다. 바로 그 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해외까지 와서 이러는 것도 창피하다, 날 믿고 계실 부모님께 죄송하다...그렇게 갑작스럽게 무욕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바람에, 함께 춤을 추던 여성이 손을 씻는 동안 나는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친구들은 다른 클럽으로 들어가버린 상태고 내 텍스트를 받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결국 나는 택시를 찾아 큰 길가로 나오게 되었다. Lan Kwai Fong의 어느 한 지점에는 사람들이 정말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있다.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이렇게 못들어가서 안달인가 하고 보면 택시를 기다리는 줄이다. 절반 정도는 나처럼 현타를 느끼고 돌아가는 사람들이겠거니 하고 줄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이 없어 큰 길가로 나가게 된 것이다. 이곳을 향해 들어오는 택시들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예상외로 택시는 금세 잡혔고, 학교까지는 100HKD가 조금 덜 들었다. 기숙사 앞에 도착해보니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부축받아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하는 서양인들도 보였고 클럽에서 즐기다가 마찬가지로 현타를 받았는지 홀로 일찍 들어가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이렇게 미친 저녁을 보내다가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는구나. 돌아와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복학왕을 보면서 제대로 살아야겠다 다시금 다짐하며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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