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남학생의 궁핍한 홍콩 여행-16일차의 사치

 좋은 습관이 아닌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홍콩에서 특히 싼 것을 찾아서 사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그런 건 없다.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최저가를 검색할 수 있는 세상에서 홍콩 시장 바닥에서 더 싸게 파는 것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에 hong kong cheap brand라고 검색을 해보았고 가장 첫 번째로 보았던 것이 제니 베이커리라는 곳에서 파는 버터쿠키였다.

 나는 쿠키류를 무척 좋아한다. 달디 단 디저트 류를 좋아하는 듯 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크리스피 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드가 너무 좋아서 제대 후에 도넛 가게 알바를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고 홍콩에 와서도 '입학식' 비슷한 행사를 갔을 때도 로비에 차려진 마카롱과 각종 케이크들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사실 내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아까워서 잘 하지는 않는다만, 홍콩에서 살 수 있는 싼 제품들 중에 의류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를 하고 있는 버터쿠키 정도는 내가 사치를 부려서 사 봄직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침사추이에 제니 베이커리가 존재한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너무 한낮이었기 때문에 햇빛을 피해 버스를 타고 갔다. 홍콩에는 미니버스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인데 하차 벨이 존재하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웬만한 탑승객들은 대부분 내릴 때 즈음에 기사님에게 소리를 질러서 내리겠다는 의사 표명을 한다. 또한 버스가 제일 바깥쪽 차선에서 운행 중이라면 꼭 정해진 정류장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버스를 멈춰서 타거나 내릴 수가 있었다. 거의 택시 수준인 셈이다.

 놀랍게도 제니 베이커리는 내가 그간 침사추이를 갈 때마다 거쳐갔던 Chungking mansion 상가에 있었다. 영화 중경삼림을 본 사람이라면 홍콩에 왔을 때 한 번 쯤은 가고 싶어하는 청킹 맨션은 리모델링을 통해 영화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고, 'Chungking mansion'이라 적힌 간판과 조금은 무섭게 보이는 1층만이(1층은 일부러 리모델링은 하지 않은 것인지 낡은 모습 그대로이다) 이곳에서 영화를 찍었구나 알게 할 뿐이다. 지나치기만 했던 청킹맨션의 2층으로 올라가니 내부 리모델링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인지 홍콩에서 봐 왔던 그냥 일반 쇼핑몰의 모습과 똑같았다. 영화의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실망스러웠지만 영화의 모습과 똑같았어도 너무 지저분해서 심히 실망했을 것이다. 제니 베이커리라고 적힌 표지를 따라가 보니 놀랍게도 빵집이 아니었다. 그냥 쿠키를 파는 조그마한 매대에 불과하였다.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빵집 이름처럼 해놓고는 그냥 쿠키를 만들어 다른 소매점들에 납품하는 업체에 불과하였구나 싶었다. 가격을 보니 더욱 실망스러웠다. 조그마한 철제 상자에 쿠키가 들어있는 것인데 98HKD이니 한화로 15000원 가까이 하는 셈이다. 내가 이걸 내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것인가 고민이 잠깐 되었지만 앞으로 명품을 사 입을 것도 아니고 미슐랭을 찾아 다닐 것도 아니고 쿠키라도 하나 사치를 부려서 먹어봐야겠다 싶어서 그냥 샀다.

 하나 사긴 했다만 먹을 곳이 마땅찮아 카페에 들어갔다. 침사추이의 카페들은 임대료 때문인지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다. 25HKD로 한화 약 4300원 하는, 그나마 제일 싼 음료를 찾아서 주문하려고 하니 옆에 있는 미니캔에 담긴 코코팜, 봉봉  등 한국 음료들을 진열해 놓은 매대를 가리켰다. 200ml 정도 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500원에서 700원이면 사는 것을 4300원 주고 사먹어야 하는 것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38달러나 주고 딸기에이드를 샀는데 이것마저도 200ml정도 크기의 잔에 담겨서 나왔다. 욕 할 뻔 했지만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버터쿠키를 맛보았다.

 진짜 맛있다. 네 가지 종류의 쿠키가 들어있는데 기본 베이스는 버터가 맞다. 버터링의 상위버전이라고 생각되는 맛인데, 한 번 쯤은 사치를 부려서 먹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름 선방했다. 입에 들어가면 침 때문에 녹는 품이 아무래도 버터를 무지하게 많이 쓴 것 같다. 그래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 사실 더 먹으면 느끼하겠지만 비싸서 한 번에 많이 먹을 생각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이다.

 조금 먹다가 카페 알바가 와서 외부 음식은 안된다고 하기에 포기하고 딸기 에이드를 후딱 마셔버리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길거리에 진열되어있는 쿠키 상자의 가격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98달러 이상 하는 상자는 없어 보였다.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식료품 쇼핑을 하러 마트에 가 보아도 98달러 하는 과자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딸기 타르트를 과자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상자가 50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사먹지 않은 과자이니까 한 번 맛 본 것으로 만족한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와 출출한 김에 우유와 함께 버터쿠키를 먹었다. 그래도 맛은 있으니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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