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남학생의 궁핍한 홍콩 여행-15일차의 단상

 홍콩 현지 음식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음식을 떠나 세밀한 거의 모든 부분들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점심은 학생 식당에서 수업 중 만난 중국인 유학생과 함께 먹게 되었다. 중국 본토 사람 특유의 억양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서 예전에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 Jack이 떠올라 잠깐 향수에 젖을 뻔했지만 학생 식당 메뉴로 나온 음식을 보고 온화함이라고는 삭 가시게 되었다. 리조토를 생각한 것인지 밥에 크림을 올린 음식이었다. 말 그대로 '올렸다' 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 볶은 것도 아니고 뜨뜻미지근한 밥 위에 크림과 함께 브로콜리, 당근, 호박 등 갖은 채소들을 올린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두 스푼을 먹다가 이 음식은 도저히 콜라 없이는 먹지 못하겠다 싶어 콜라를 천 원 주고 한 컵 사왔다. 콜라와 함께 두 세 스푼을 먹다가 이 음식은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 싶어 그냥 콜라만 마셨다. 중국인 친구가 나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자신의 음식을 조금 나눠주려고 했지만 차마 먹지 못하였다. 여기 음식이 입맛에 맞느냐는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잘 안맞는다며 손사레를 치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래...다같이 못먹는 신세인데 너라도 잘 먹어라 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의 밥상을 그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이 곳은 음식에 잘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신경'이라는 말이 조금은 광범위하지만, 그만큼 넓은 범위에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맛의 배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맞지만 오늘 하나 더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나의 그 문제의 음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때, 음식접시가 놓여진 매대 위를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막상 보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뭐 바퀴벌레 정도야 지나갈 수도 있지, 더럽긴 하지만 쬐끄매서 세균좀 옮긴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음식 맛도 없다 보니까 울화가 치밀어 도대체 여기는 바퀴벌레가 지나가던 말던 상관도 안 하는 곳인지 성질이 난다. 이런 음식만 제공 받는다면 음식을 먹지 않아 곧 죽을 것이다. 바퀴벌레보다 더 큰 문제이다.

 인터넷에 당연히 이딴 음식은 없을 줄 알았는데 hong kong cream rice라고 치니 바로 등장하였다. 정확히 똑같이 생겼다. 길쭉한 용기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에 또다시 부아가 치민다. 부숴버리고 싶다.

 계속해서 홍콩은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너무 막연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것은 목적만 생각하고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인도 영화를 본다면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인도 발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 '세 얼간이'에서는 학교의 선생님이 뻐꾸기를 들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왜 들고 다녔는지 생각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저것을 뻐꾸기라고 관객들이 여기게끔 연출하였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뻐꾸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줬느냐, 무슨 교훈이 있느냐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리우드에서는 뻐꾸기 그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그냥 대충 모형 뻐꾸기로 대체해 놓았다. 근데, 이왕 뻐꾸기를 활용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거라면 그래도 진짜 뻐꾸기같은 것을 써서 몰입감을 해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감상평이었다.

 홍콩의 거리는 인도영화보다 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야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이니 연출에 그렇게 깊이를 두지 않는 것을 이해하겠지만, 거리 조경은 다르다. 심미적인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거리인데 홍콩은 그런 것을 전혀 무시한다. 물의 도시답게 여러 곳에 분수를 이쁘게 조성해 두었지만 분수 옆 거리의 포장 상태는 말이 아니다. 한 곳에서 포장을 끝내고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 포장을 시작하고, 둘 사이의 균열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도로가 이리저리 갈라져 있는 모습이다. 건물을 보더라도 아무리 녹이 슬고 균열이 생겨도 살아가는데 지장만 없다면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 둘 디테일이 망가지다 보니 어느 측면에서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균열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식판 근처를 멀쩡히 서성이는 바퀴벌레가 그러하고 인도를 걷고 있으면 머리로 뚝뚝 떨어지는 에어컨 실외기의 이슬들이 그러하다.

 이 사진도 hong kong air conditioner를 검색하면 dripping 이라는 검색 양식이 추천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호텔관광대학 'China Tourism' 수업에서 들은 것인데 홍콩 사람들이 중국 현지인들의 홍콩 여행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거리에서 아이가 소변을 보는 것을 방치한 중국 여행객의 엄마를 향해 시민들이 비난하는 영상을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의 시위들을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일련의 시위들 이후로 중국 본토에서 오는 여행객의 수가 줄었다고 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홍콩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음식점의 종업원들은 불친절하고 거리의 공사는 디테일 없이 진행된다. 일본에서 보았던, 도로 벽돌 공사를 하면서도 안전모를 쓰고 작업을 하던 고지식한 인부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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