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남학생의 궁핍한 홍콩 여행-13일차의 침사추이(2)

 코즈웨이베이 탐방이 끝난 후 저녁에는 인도인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남자 아이 한 명은 공대 수업 팀플에서 만난 친구이고 다른 여자 아이 한 명은 그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만난 친구였다. (남자 아이는 N, 여자 아이는 S) 사실 둘 다 인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N이야 국적이 인도이지만 7~8살 때 상해로 건너가서 외국인 학교를 다녔고 S는 심지어 미국 국적이다. N은 polyU에 full time student로 등록되어 있지만 S는 교환학생 신분이다. N과 함께 점심을 기다리다가 그의 눈길이 S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N도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단지 인도인처럼 보이기에 그랬을 뿐이었다. S가 미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N은 '인도인'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S를 생각하였을 텐데, S는 미국인인데다가 N 본인도 인도에는 일년에 한 두 번씩밖에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이 정도 된다면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보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누가 봐도 인도인인 S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을 때 'America'라는 답을 들었던 순간이 생생하다. 어쨌든 '인디언'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져서 어색하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것은 의미없었던 게 서로에게 인도 문화를 가르치려고 하며 아웅다웅 다투는 것을 보고 '아 둘다 인도인이라고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인도인 둘이서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기에 그럼 다음에 멕시코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 해서 모이게 된 것이 오늘이었다. 

 사실 영어가 그렇게 편한 것은 아니지만, S의 말은 알아듣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기본적으로 키가 작아서 그런지 성량이 풍부치 못해 데시벨이 낮은 탓도 있지만 왜 여자의 말을 들을 때 남자의 뇌 구조에서 언어 부분이 아니라 노래 부분이 활성화 된다고 하지 않는가. S의 말을 이해하는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N이 상당히 활달한 성격이다. 물론 S도 활달하지만 내가 말을 잘 못알아듣기에... 어쨌든 침사추이에 있는 N이 알고 있는 멕시코 음식점으로 건너가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많이 먹긴 했다. 1인 1메뉴에 가운데 나초 하나, 각자 맥주 한 병 씩. 나초도 그냥 먹는 과자 나초가 아니라 고기도 들어가고~ 채소도 골고루 들어간 맛있는 음식이었고 내 메뉴였던 부리또 역시 양이 어마어마 했다. 하지만 총 합해서 603HKD, 한화로 대략 9만원이 나왔다는 것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홍콩에 있는 조금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는 음식점들의 가격체계는 조금 희한하다. 홍콩 로컬 식당들은 물 대신 차를 주는데, 이 차 역시 나중에 계산하려고 보면 돈을 내야하는 것이다. 찬 물을 마시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밥을 먹을 때 뜨거운 차를 마셔야 하는 것이 늘 못마땅한데도 나중에 계산을 할 때 빼꼼히 꼽사리를 껴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언짢다. 또한 Service Charge개념으로 10%를 내야 한다. 이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계산방법이다. 세금도 아니고 팁 명목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걸로 총 음식 가격의 10%를 뜯어가는 것이다. 가난한 남학생이 가기에는 치가 떨리는 음식점들이다. 또한 맥주 가격이 어마어마 하다. 한국에서는 그냥 기분 좋게 시킬 수 있는 4000원짜리 맥주가 홍콩에서는 만 원 이상 할 것이다. 이 멕시코 음식점에서는 그보다 작은 병맥주를 60HKD, 한화 약 9000원에 판매한다. 

 인당 3만원씩 내려고 하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음식점에서 나와 야경을 보러 빅토리아 하버로 향했다. 낮에는 두 차례 와본 적이 있었지만, 밤에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꽤나 괜찮았다. 나쁜 대기 탓인지, 밝은 밤거리 탓인지 (둘 다다)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저물어가는 달이 하나 보여서 더욱 괜찮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더욱 쭈그러들어서 인도인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야했다. 여전히 S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턱수염도 있고, 상당히 나이가 있게 보였던 N이 사실은 98년 생이라는 것이다. 내가 2개월 가량 과외를 맡았던 애보다 꼴랑 한 살 많다. 대학으로 따지면 17학번인 셈인데, 애가 운동도 열심히 하며 생활도 참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다음 주에 있을 스타트업 경연에서 발표를 맡게 되어 다음 주부터 바빠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95년 생인 나는 지금 해야 할 공부조차도 귀찮고 하기 싫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데 한참 어린 동생은 운동도 몇년 째 꾸준히 하고 있고, 자신을 찾는 사람도 있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린 나이가 아니구나 실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학기 중에 드론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도 그저 나는 기계과에 이제 진입했으니까, 고작 한 살 많은 팀장과 동갑인 프로젝트 매니저 사이에서 뒤치다꺼리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생각했었던 게 바보같다. 뭐라도 꾸준히 해서 자신있는 분야를 빨리 만들었어야 했다. 

 교환학생을 통해서 견문을 좀 넓혀야지 했는데 그 동안 단 한 번도 견문이 넓어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말로 내 현실을 조금이나마 자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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