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식 글쓰기 연습-안희정 무죄판결로 주절주절

 고등학생 시절 학교로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가 강연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선배인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당시에 안희정의 보좌진이었던가, 아무튼 그런 연유로 오게 된 것이다. 충남지사라면 역시 대단한 것이지만 더 이상 뭘 어쩌겠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강연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박근혜 탄핵을 타고 대선 주자로 급부상하는 것이었다. 난 조금 반응이 느린 터라 그제서야 "와 사람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고 있었을 텐데 금세 성추행과 성폭행 폭로로 무너졌다. "사람이 그렇게도 가는구나" 하고 있는데 오늘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1심일 뿐이고, 더욱 험난한 2심과 3심이 남아있지만 1심 무죄 판결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판결이 아닐 수가 없다. 아마 안희정 본인도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진짜요?"

 그런데 딱히 유죄인가 하면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증거라고는 피해자 본인의 진술 뿐이었고 그나마 재판부에서는 "피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점, 지난 2월 마지막 피해를 당할 당시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한 상태였음에도 안 전 지사에게 그에 관해 언급하거나 자리를 벗어나는 등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진술의 일관성을 의심했다. 이번 판결에 여성단체들은 곧바로 비정상적인 판결이라며 울분을 토해냈는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뻔한 말이군요).

 뻔한 결론밖에 내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서로 채용한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니, 안희정인 반사회적이고 어쩌면 변태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가 없다. 안희정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나 간음'인데, 이 경우에는 폭행이나 협박이 증거로 채택될 필요도 없이 1. 안희정이 '업무상 위력'을 휘두를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었는지, 2. 간음이 이뤄졌는지 정도만 입증이 되면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2번은 안희정의 인정으로 넘어갔지만 1번을 뚫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안희정이 어디까지나 상사이고, 주변 지인들만 잘 인터뷰 한다면 그 정도는 쉽게 입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또 그렇게 간편한 일도 아닌가보다. 참 간단해 보이는 재판이었는데 쉬운 일이 하나 없네요.

 재판 사례를 보면 사장과 부하직원 간 성폭행이 있었던 경우에 사장이 "무릎꿇고 사죄할 기회를 달라" 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결정적인 '위력에 의한 간음' 증거로 채택한 경우가 있다. 안희정은 교모하게 '텔레그램'이라는 유출되지 않을 메시지를 이용했다고 한다. 증거들을 없앨 우려로 검찰이 구속 기소를 신청하자 이미 삭제된 증거들에 대해 '자신이 지우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빠져나왔다고 하는데, 이게 말로 풀어써서 참 쉽게 빠져나갔다고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수사망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저런 문자를 많이 주고 받았을텐데 범죄를 입증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재판을 관찰하는 입장으로서도 참 싱거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주절주절 잘도 떠들었지만, 간편하게 번호로 사건의 정황과 무죄판결이 난 요지를 짚어 보자면, 
1. 상사와 비서 간 간음이 있었다.
 2. 비서는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검찰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기소했다. 
3.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1) 간음이나 추행 여부 와 (2) 업무상 위력 행사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4. 비밀 메시지인 '텔레그램'과 안희정의 다양한 증거 인멸로 증거가 부족했던 검찰은 결국 입증에 실패했다.
5. 무죄 판결이 났다.
정도가 되려나, 이 정도로 정리되는 것에 대해 피해자는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힘내세요!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Answers for Sound and Vibration exmples

아두이노 - 안드로이드 블루투스 연결 및 실시간 그래프 표현 (1)

하루키식 글쓰기 연습-에어맥스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