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식 글쓰기 연습-가장 밑의 스퍼스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좋아한 지는 꽤 된 듯 하다. 정확한 연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가 NBA를 휩쓸던 때가 있었다. 막 농구를 알아갈 무렵, 우연히 시청하게 된 경기가 LA 레이커스 대 샌안토니오 스퍼스였고, 그 경기부터 스퍼스를 좋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는 팀을 응원하는 성격으로서 LA 레이커스는 매력적인 팀이 아니었다. 코비는 도무지 막을 수가 없는 선수 같았고,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는 샌안토니오를 응원하고 있었다. 코비가 화가 나서는 수건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모습, 데릭 피셔가 바스켓 카운트를 넣으며 동점을 만들어 내는 모습 등이 머릿속에 혼재되어 있지만(심지어 같은 경기의 장면들인지도 헷갈린다) 정말 재밌는 경기였다. 아마도 명경기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던 때일 것이다. 결국 샌안토니오는 레이커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아마 레이커스가 홈 연승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는데 샌안토니오가 부쉈던 때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역시 그간 숱하게 봐왔던 경기들이 머릿속에서 혼재되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 뒤로 나는 늘 샌안토니오를 응원했다. 군대에 있을 때, 집에 잠시 내려와서는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를 시청하기도 했고(개막전으로 기억하지만 최강으로 평가받던 워리어스를 크게 이겼다) 각종 신인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내가 뿌듯해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름 잘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보리스 디아우가 떠나고 골스에서 건너왔던 데이비드 리도 떠나고, 토니 파커와 레너드의 부상, 팀 던컨의 은퇴 등등 아쉬운 장면들도 숱하게 보게 되었다.

 샌안토니오가 더 이상 강팀을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칠 수 있는 팀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나이 든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으면서도 보강을 하지 않는 구단과 감독이 미웠다. 큰 투자를 받는 팀이 아니라는 사실은 들은 바가 있지만, 그 전이라고 큰 투자를 받으면서 우승을 이뤄냈던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그렇게 잘 싸워왔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탐탁지 못해하는 나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엔 잘하는 팀을 응원하는 별볼일 없는 팬이었던 것인가, 하고 나에게도 실망하게 되었다.

 오늘 휴스턴에게 패배하면서(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순위가 7위로 내려 앉은 것을 보았다. 정말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다른 팀들의 경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확인한 순위였다. 오늘의 최종 순위는 10위였다. 서부 컨퍼런스의 꼴찌인 셈이다. 정확히는 공동 8위였지만, 아마 동 순위시 상대 전적으로 따지므로 꼴찌가 맞을 것이다.

 친구에게는 몇 달 전부터 샌안토니오를 응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런 순위를 보고 나자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던컨 이후 은퇴 전까지 6할의 승률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더랬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당연한 것이었고 리그의 1위 혹은 2위였다. 휴스턴의 댄토니 감독은 포포비치 감독을 제대로 이겨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했다.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레너드를 제외하자면, 패티 밀스와 대니 그린의 3점 슛은 항상 든든했고 파우 가솔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육안으로도 보이면서도 클래식한 모습이 좋았다. 베르탕스나 디욘테 머레이 같은 신인이나 다름없는 선수들도 나와서 샌안토니오 식 경기에 적응을 해갔고 이제는 떠나버렸지만 조나단 시몬스나 데드먼 같은 선수들의 파워풀한 플레이가 멋졌다.

 남은 시즌에서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레너드가 돌아오겠지만 지난 번에 돌아왔을 때도 포포비치 감독의 엄한 눈초리 아래에서 몇 분 제대로 뛰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시즌은 이렇게 플레이오프 진출도 못하는 실로 오랜만의 시즌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 그렇다고거물 신인을 뽑는 것이 샌안토니오 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던컨 이후에거물 신인이 들어온 적이 없다. 늘 구축된 시스템에 선수들이 적응해갔고 좋은 성과를 냈다.

 던컨이 들어온지는 20년이 넘었고, 심지어 던컨도 은퇴를 했다. 정말로 다시 한 번 시작할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포비치 감독은 70을 훌쩍 넘겼는데 지금 다시 시작하면 언제까지 감독을 계속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샌안토니오 팬에게 여러모로 착잡하기만 한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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