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식 글쓰기 연습-원주율

고등학생 때 원주율을 외우던 친구가 있었다. 인기 있는 수학 동아리에서 개최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 원주율을 많이 외우는 행사도 있었고, 친구는 거기에 참여함으로서 선배들의 눈도장을 찍겠다는 계획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헛짓거리인데, 그 친구는 나름대로 열심이었다. 야자까지 빼가면서 화장실에서 원주율을 달달 외웠다. 공부를 하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아무 의미 없게 들리는 숫자들이 암송되고 있었다.

 “어떻게 되어 가?” 나는 친구를 볼 때마다 물어보았다. “60대까지는 외워지는데 그 이후로는 자꾸 헷갈려” 친구는 인상을 쓰고 대답했다. “100번 대까지는 외우고 싶은데.” 그 새 나름의 목표까지 정해놨던 것이다. 거 참!

대망의 행사날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구경을 갔지만 유달리 한 곳에만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무엇일까 궁금하여 사람들 사이로 그 중심을 들여다 보았다. 그 친구가 보였다. 긴장되는 듯 손을 꼭 맞붙잡고 약간은 먼 허공을 바라보며 원주율을 외우고 있었다. 그것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실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를 구경하고 있었고 심지어 선생님들까지고 발걸음을 멈추고 그 친구를 구경했다.

저녁이 되어 씻으러 들어가려다 그 친구를 마주쳤다. “어떻게 되었어?”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80번 대에서 틀렸어. 아쉽지만 그래도 기록이래” 그 친구는 사뭇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웃으며 축하를 전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친구는 동아리 입부 면접에서 탈락하였다. 거 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Answers for Sound and Vibration exmples

아두이노 - 안드로이드 블루투스 연결 및 실시간 그래프 표현 (1)

하루키식 글쓰기 연습-에어맥스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