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식 글쓰기 연습-"왼쪽 왼쪽 왼쪽"
방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었다. 영등포역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 1호선을 한 정거장 지난 후에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경로이다. 대학 진학 후, 숱하게 지났던만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동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영등포에서 신도림을 향하는 1호선 지하철 안이었다. 왜 굳이 이런 곳에서 정신이 든 건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앞에는 늘상 그렇듯이 빈틈없는 좌석들과 서 있는 승객들, 그 중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 셋이 있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 뿐이었다.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건가 싶은 생각에 이야깃소리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 목소리들을 뒤쫓아 가 보아도 출처는 한 곳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 셋.
신도림 역이 되자 두 명의 여성이 키스를 나누곤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는 문을 향해 가면서도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명 정도는 남자가 섞여있는 것인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나온 여자가 문 밖에서 뒤를 돌아 손을 흔들기 시작하며 나와 마주보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기에 더 이상 그들을 관찰할 수 없었다.
관찰을 포기하고 전철에서 나와 2호선을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저녁시간의 신도림역답게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앞서가는 여자의 발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왼쪽 왼쪽 왼쪽"이라고 앞서 가는 여자가 나란히 서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왼쪽으로 가야 영등포역"
물론 나도 왼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나 별 것도 아닌 여자의 말이 이토록 이상하게 다가온 것은 단순히 나와 방향이 겹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리듬을 타듯 통통거리는 그녀의 손가락이-물론 왼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례를 하듯 바닥만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생명력 넘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왼쪽"이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왼쪽 왼쪽 왼쪽"
그녀가 잘못 들은 건가 하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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